경기인천여행맛집

살랑살랑 봄 나들이 시흥 삼미시장

강진호프 2022. 4.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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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다가 물먹고 행정복지센터 갔다가 다시 병원에 가서 아내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고 길을 걷습니다. 배달 오토바이 굉음이 대단하고 공원 산책길에는 아직도 목줄을 하지 않고 반려견을 풀어놓는 몰지각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편의점 앞에는 구겨진 종이같은 표정의 아이들이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씹고 있습니다. 인사성 별로인 붕어빵 아주머니는 멍하니 길 건너인가를 응시하고 있고 횡단보도 보행신호는 또 내 앞에서 바뀌어버립니다. 

 

 

 

 

버스를 타볼까. 마치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마음을 먹자 곧 도착한 버스를 타고 여우고개를 넘어 시흥으로 갑니다. 정확히 시흥 삼미시장 앞에서 내려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두었던 국밥집에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입장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시지만 얼굴은 낯설 겁니다. 이제 두 번째 방문이니까요. 그것도 한참만에.

 

 

 

 

머리고기 작은 접시를 부탁드리고 이슬 한 잔 따라서 마십니다. 골속까지 시리게 차가웠음 좋겠지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니까. 빈 속으로 흘러드는 찬 소주의 느낌이 좋습니다. 이래서 술을 마시지요. 턱 밑까지 차있던 먼지같은 것들이 투명한 이슬로 한순간에 쑥 쓸려 내려갑니다.

 

 

 

 

1만원 머리고기 한 상입니다. 꽤 괜찮은 차림이지요. 소주 한 병 세워놓고 천천히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머리고기는 살짝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깔끔하고 담백하니 좋았습니다. 국밥집마다 머리고기의 모습이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있습니다. 쪼로록 따라서 쭉 빨아먹는 찬 소주의 맛이 일품입니다. 

 

 

 

 

출력 좋은 스피커에 재생목록에 있는 곡들이 흘러나오면 더욱 금상첨화겠다는 생각을 하다 바로 접어버립니다. 틀어놓은 tv 뉴스 소리와 옆테이블의 작은 대화소리 일하시는 분들의 웃음소리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들이 어울려 술 마시기에 편안한 리듬을 만들어 줍니다. 잡념없이 술과 안주에 집중해봅니다.

 

 

 

 

벽 한 켠에는 천상병의 시 '귀천'이 적혀 있습니다. ' 나 /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별명이 '오백원만'이었다고 들은 적?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만나면 오백원을 달래서 술을 사먹더라는 일화와 함께 말이지요. 불온한 권력집단의 희생이 되어 시련의 세월을 보낸 그에게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을텐데 .. 그래서 반어적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한잔 잘 마시고 일어납니다. 잠시 시장주변을 둘러보고 민물새우탕에 막걸리 한잔 더 하러 갈 겁니다. 오후 5시 52분. 봄 오후는 훈훈한 바람으로 살살 잔털들을 일으켜줍니다. 기분 좋은 봄날입니다.

 

 

 

 

종로 3가에 가면 곧잘 가는 한국통닭이 이곳 삼미시장 근처에도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통닭에 생맥주 한잔 할 수 있습니다. 야장이 최고의 자리일 것 같습니다. 옆의 약국 이름은 지리산이네요.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방문을 또는 창문을 열면 앞에 커다란 지리산이 잠에서 깨어나는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일일 것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용기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사장님께서 민물새우탕 자랑을 하시면서 다음에 와서 한번 먹어보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왔습니다. 전작이 있긴 하지만 다시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장님 손맛이 좋습니다. 장수막걸리, 조금 더 맛있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민물새우가 잔뜩 들어간 매운탕이 나왔습니다. 2만원짜리도 있고 1만원짜리도 있습니다. 저 같이 혼자 오시거나 안주 추가를 할 때 1만원짜리도 가능한 듯합니다. 국물 몇 숟가락 떠먹고 수제비도 몇 덩이 건져 먹습니다. 왜 그렇게 자랑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새우탕에서 간신히 헤어나오는 순간 엄나무순이 보였습니다. 지금 아니면 맛을 볼 수 없는 제철 식재료 엄나무순. 짧은 고민 끝에 1만원어치만 부탁드렸습니다. 시장에도 많이 나와 있던데, 경상남도 하동에서 올라온 놈이라고 또 자랑을 하십니다. 3월말에 매화 보러 하동여행을 계획했다가 접은 기억이 나네요. 무엇때문에 가지 못했을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제 훌쩍 떠나기도 어려운 무게를 지고 살아가나 봅니다.

 

 

 

 

엄나무순이 한 접시 놓입니다. 바깥사장님께서 직접 캐오신 씀바귀가 한켠에 자리잡고 있고요. 엄나무순은 살짝 데쳐서 주셨습니다. 싱그러운 봄을 맛볼 생각에 들뜨기 시작합니다.

 

 

 

 

초장 살짝 찍어 맛을 본 엄나무순은 그 안에 봄이 다 담겨 있었습니다. 바람 흙 햇살 비.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던지고 하루하루를 잘 준비해 적당한 때 고개를 내민 봄 새싹은 최고의 안주가 되어줍니다. 씀바귀는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더해져 입맛을 돋우며 묘하게 기분을 끌어올리는 재주가 있습니다. 취한 소처럼 엉덩이 깔고 앉아 여물 씹듯 봄을 씹어대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잘 먹고 있으니 슬쩍 민들레도 올려주고 가시네요.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회식을 와 북적입니다. 도리뱅뱅이를 시키고 메추리구이를 시키고 마지막에 들어온 물주인 듯한 분이 닭볶음탕까지 주문합니다. 지인들과 왁자지껄 모여 술자리를 가진 지도 꽤 오래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가끔 그런 자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지긋지긋했던 코로나19. 그래도 용케 잘 이겨낸 우리는 역시 대한민국.

 

 

 

 

그냥 지나쳤어야 했는데 클클, 취해서 떡볶이까지 맛을 보았네요.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났던 그 떡볶이를 생각했었는데 살짝 달랐습니다. 당연히 다르겠지요. 여기는 여기고 거기는 거긴데. 술 취한 아재들의 고집은 똥고집입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여우고개를 넘어 집으로 갑니다. 고단한 하루를 싣고 달리는 버스도 고단해 보입니다. 도시가 조금만 조용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불빛도 좀 줄이고 자신의 주장도 좀 작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좀더 겸손한 도시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게 중얼거리며 집에 갔습니다. 기분전환 제대로 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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