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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여행맛집

내 삶 자리가 강진인 이유 - 무위사, 백운동원림, 강진다원, 월남사지

by 강진호프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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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떨어집니다. 우산을 바쳐 들고 걸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표를 끊고 오전 10시 30분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어봅니다. 오늘은 월출산을 향합니다. 무위사 극락보전을 바라보고 백운동원림을 거닐어 볼 겁니다. 짙은 초록의 다원과 웅장한 월출산 봉우리들에 감탄하며 월남사지까지 걸어 오래된 석탑 곁에 한나절 머물다 돌아올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장마철에는 자동차가 있어 편리하게 돌아보고 왔지만 이번에는 걷거나 버스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더욱 홀가분하기도 할 겁니다. 

 

 

 

 

강진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35분 정도를 달려 무위사 앞에 도착을 합니다. 툭 떨어져 내린 나그네는 바쁠 것이 없어 한동안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주한 극락보전은 여전히 민낯입니다. 이른 아침 찬물로 얼굴을 씻어낸 모습으로 극락보전은 가만히 나를 내려다 봅니다. 

 

 

 

 

만약 이 세상 마지막 자리를 정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자리가 좋겠습니다. 하염없이 앉아 서서히 낡아갈 것입니다. 연꽃 문양 배례석 앞에서는 늘 고개를 떨굽니다.

 

 

 

 

무위사를 나와 강진다원과 경포대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릅니다. 차들이 다니는 차도이지만 차가 드뭅니다. 비를 머금어 짙어진 아스팔트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어쩌다 담아보고는 놀라 곧 지워버리는 나의 모습은 꽤 많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보기 싫기도 하고. 길이 적적해 보일까 싶어 쓰고 있던 우산을 던져 놓고 길을 담아봅니다. 

 

 

 

 

작고 예쁜 마을 하나를 가로질러 백운동원림(정원) 입구에 도착을 합니다. 노란 은행잎이 반기더니 곧 푸른 동백숲이 깊이를 만들며 이어집니다.

 

 

 

 

그 시절 다산 정약용은 월출산에 올랐다가 하룻밤을 이곳 백운동원림에서 묵어 갑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마다 그림과 시를 한 수씩 남겼는데 지금까지 <백운첩>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뻗은 대숲으로 난 길을 따라 원림을 벗어납니다. 촉촉한 흙길에 다시 빗방울이 듣고 울창한 대숲에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또한 울창합니다.

 

 

 

 

제주처럼 강진에도 다원이 유명합니다. 월출산다원으로 불리나 봅니다.

 

 

 

 

월출산 단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원의 풍광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월출산이 잘 바라다보이는 곳에 집을 얻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절집을 좋아하지만 절터를 더 좋아하기도 합니다. 가득 들어 차 있던 것들이 불에 타고 무너지고 낡아가고 사라져가고. 세월을 견딘 석탑 하나 또는 둘 남아서 상주처럼 객을 맞이하는 터. 비어 있는 공간이 더 많지만 그래서 더 가슴을 후비고 그래서 더욱 대견하고 고마운.

 

 

 

 

'월출산 월남사 대웅전 복원 불사로 관람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누구의 뜻일까요. 나는 오늘 터 하나를 잃었습니다. 위로가 그리고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달려와 가득 쉬고 가던 그 좋던 낡아가던 터가 사라졌습니다. 참 슬픈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참을 배회하다 느닷없이 달려오는 버스에 달겨들어 월남사지를 떠납니다.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오더라도 곁눈으로 바라보고 지나치지 않을까요.

 

 

 

 

강진으로 돌아가는 길. 성전터미널에 내려 늦은 점심 식사를 합니다. 설거지와 행주질에 분주하시던 노부부께서 엉거주춤 들어서는 객에게 기꺼이 먹을 거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짬짜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싶을 때 시키는 편의를 봐주는 그것이 아니라 이것만으로 훌륭한 풍미의 음식입니다. 울적한 마음에 달콤매콤을 섞어 먹으니 기분이 나아집니다. 돼지고기와 양파에 오징어와 버섯을 함께 씹으니 입안이 어쩔줄 몰라 합니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강진읍으로 들어갈 채비를 합니다. 몹시 숙원했던 오늘의 행보였습니다.

 

 

 

 

탐스럽게 열렸던 가을이 이제 끝나가나 봅니다. 오늘은 절기로 소설小雪입니다. 눈대신 비가 오지만 곧 매운 겨울이겠지요. 코끝 시린 겨울 어느 날에 다시 한번 이 길을 거닐어 볼 생각입니다. 그때는 제법 눈이 내리고 있으면 좋겠네요. 

 

 

 

 

숨차게 달려온 버스에 올라 아침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지언정 자꾸 떠나고 싶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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