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창평 슬로시티를 걷고
창평시장에 들러 맛있는 국밥으로 점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차를 몰아 소쇄원에 들어 시간을 보냈지요.
참 좋은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소쇄원을 나와 송강 정철이 떠오르는 식영정을 찾았고
그 다음에는 환벽당과 취가정까지 슬슬 걸어 둘러보았네요.
담양에서의 한나절이 꽤 운치있고 좋았습니다.
야트막한 동산 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환벽당입니다.
짙어가는 신록으로 둘러싸여 있어 뭔가 폭 안겨 있는 느낌입니다.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겸춘추관(承文校理兼春秋官)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弘文官校理),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松江鄭徹 1536~1593)과 서하당 김성원(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과 김덕보(金德普)형제는 그의 종손(從孫)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곳에는 식영정(息影亭)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醉歌亭)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이 자리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苑林文化)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Daum백과
환벽당 주인 김윤제와 정철이 만났다는 조대와 용소는 이정표가 없어
정확하지 않으나 이쯤이겠구나 싶네요.
경계를 둘러치지 않은 문화재는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의 손길이 직접 닿을 수 있어
그렇게 '닿음'과 '쓰임'으로 유지 보존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무수한 세월의 더께가 앉았을 환벽당의 마루.
환벽당 마루에 걸터 앉아 바라본 정면의 풍경은 이렇네요.
신록이 가득합니다.
환벽당 뒷편에서 방문을 통해 바라보면 또 이런 풍경이 만들어지네요.
차려주는 밥 받아먹으면서 한 삼사일 머물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에도 등장하고 있는 환벽당입니다.
마지막으로 환벽당을 바라보고 다시 길을 옮겨봅니다.
환벽당에서 취가정으로 가는 길.
고즈넉해 발소리마저 조심합니다.
역시 자그마한 동산 위에 앉아 있는 취가정.
'1890년 김덕령 장군의 후손 난실 김만식과 친족들이 충장공의 성장지에 지었다. 그 후 1950년 6·25 동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난실의 후손인 김희준과 친족들이 1955년에 중건하였다. 정자의 이름을 취가정이라 한 것은 권필이 자신의 꿈에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이 술에 취해 나타나 서로 시를 나누었는데 외로운 혼을 달래기 위해 읊은 〈취시가〉에서 유래한다.'
- 위키백과
4월의 신록과 맞닿아 있는 취가정입니다.
봄꽃들이 만발한 봄날도 좋지만 이렇게 꽃 진 후 펼쳐지는 신록의 향연도 매우 싱그러워 좋습니다.
취가정에 앉아 바라본 풍경.
구불구불 이어진 흙길을 한 나그네가 걸어갑니다.
무념무상.
'신록의 푸르름 속에 가만히 앉아 있기.'
이번 담양 여행은 이렇게 정리가 되는 듯합니다.
취가정 앞으로 난 길을 잠시 더 걸어봅니다.
넉넉하게 머무르며 걷고 싶은 담양의 길들.
광주댐으로 흘러드는 개천을 건너가 커피 한잔 마시러 갑니다.
저만치 환벽당을 감싸고 있는 푸른 숲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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