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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in life

5화. 사진전 입선

by 강진호프 202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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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진전에서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입선을 받았다. 상장과 함께 당선작들이 실린 작품집을 소포로 받았을 때에는 사뭇 기분이 좋았다. 마침 식구들이 없었을 때라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둘까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식구들의 반응은 심심하게 곧 끝이 났다.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생각이 나 입선 소식을 전했다. 친구에게는 그날 내가 한 이야기 중 가장 한심한 이야기로 들렸나보다. 그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뛰우는 기형도의 시*가 떠올랐다. 아, 기형도여! 내년에는 특선 정도를 목표로 몰두해 보아야 겠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반응은 심심하고 표정은 가관이겠지만,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나.

 

*기형도, '위험한 가계·1969'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만약 당신이 예술이나 문학을 원한다면 그리스인이 쓴 것을 읽으면 된다. 진정한 예술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노예제도가 필요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이 그러했듯이, 노예가 밭을 갈고 식사를 준비하고 배를 건조하고, 그리고 그 동안에 시민은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시작詩作에 심취하고 수학數學에 몰두한다. 예술이란 그러한 것이다. 모두들 잠이 들어 고요한 심야 3시에 부엌의 냉장고를 더듬는 인간으로는 그런 정도의 글밖에 쓸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서계인 옮김, 청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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