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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가을, 종종 겨울이 까치발 들고 인사를 건네고는 한다. 겨울을 좋아한다. 생일이 있기도 하고 눈이라도 내리면 아직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언가를 마무리하기에도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시의적절한 계절인 겨울. 날은 추울 수록 좋고 외투는 따뜻할수록 좋다. 따뜻한 외투 같은 겨울이 오늘 아침에도 해맑게 인사를 건넨다.
「별일 없으시죠, 사랑해요, 여러분.」
올 겨울은 기억 속의 겨울보다 더 추울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가만있어보자, 내 두터운 겨울 외투가 어디에 있더라.
「어두운 마음을 갖고서는 어두운 꿈밖에 꿀 수 없어. 아주 어두운 마음으로는 꿈조차 꿀 수 없지.」
돌아가신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내가 최초로 한 일은 팔을 뻗쳐 그녀의 눈꺼풀을 가만히 감겨 주는 일이었다. 내가 눈커풀을 내리는 동시에 그녀가 79년 동안 계속 품어 왔던 꿈은 마치 포도鋪道 위에 떨어지는 여름날의 지나가는 비처럼 고요히 사라져서 나중에는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서계인 옮김, 청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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