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지난 가을 이야기가 되었네요.
딸 아이가 강진에 내려왔습니다. 수능을 마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강진은 쉼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아이와 함께 하면서 함께 먹고 함께 걸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툭툭 인생에 대한 삶에 대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도 던져가며 여백과 같은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나는 아이의 모습을 담고 아이는 나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던 4일간의 기록입니다.
생애 처음이었을 혼자만의 다섯 시간 넘어의 버스 여행.
출발을 알리는 사진이 톡으로 날아왔습니다.
아이가 도착하기 두 시간 전부터 함께 할 일정을 그려보며 막 비가 그친 강진읍을 거닐어 봅니다.
빗물에 비치는 강진읍교회의 종탑.
이 종탑은 1919년 4월 4일 강진독립만세운동의 신호를 알린 독립만세종으로
2020년 강진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강진군도서관 앞 정원의 '제주목사 조공 정철 만세 불망비'에는
간밤의 비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들이 가득합니다.
오후 두 시가 넘어 도착한 아이와 함께 늦은 점심을 들었습니다.
마침 장날이라 시장구경을 간단히 하고 <광주식당>엘 들러 백반과 팥죽을 먹어볼까 하고 갔다가 영업이 끝나
오감통 먹거리장터 안의 <대통령밥상>에서 한정식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겨울 이불 한 채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고 피곤했는지 아이는 곧 낮잠에 빠집니다.
저녁 즈음 걸어나가 치킨 한 마리 포장해 와서 저녁 삼아 먹고 첫날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딸 아이의 컨디션에 모든 걸 맞추기로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예보대로 매서운 한파가 찾아옵니다.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강진만 생태공원>에 산책을 나갑니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갈대밭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전거도로를 거닐며 바라보는 강진만과 갈대숲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산책을 목리마을 구.목리교까지 이어가
<착한돼지식육식당>에서 애호박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오려 했는데,
영업시간이 오후 4시부터로 변경되었네요.
아마도 꽤 오랜시간 이어지고 있는 도시가스공사로 인해 점심 영업이 불가능해진 탓인 듯합니다.
숙소로 돌아와 냉장고에 쟁여둔 것들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쉬어 갑니다.
아이는 좋아하는 블록 맞추기에 집중하고 나는 읽고 있던 책을 펼쳐 독서에 몰두해 봅니다.
평화롭고 평온한 시간이 흐릅니다.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바나나 하나씩 까먹고 수영복을 챙겨 나섭니다.
둘쨋날 오후는 딸아이와 좋아하는 수영을 하며 보낼 예정입니다.
종합운동장 내 강진군 스포츠산업단에서 관리하는 실내 수영장은 일일권이 3천원.
25m 레인이 6개 준비되어 있는 아담한 실내 수영장입니다.
안에 찜질방도 구비되어 있어 환경은 좋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레인 하나 거의 전세 내어 놀았네요.
자유형으로 질주하는 딸아이의 자세가 많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찜질방에서 기운을 차리고, 허기가 몰려올 때쯤 씻고 나와 저녁 만찬을 즐기러 가봅니다.
저녁은 아침에 실패했던 <착한돼지식육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로 합니다.
애호박찌개를 먹을 때 안에 들었던 고기의 맛과 상태가 좋아
언제 한번 이집에서 고기 좀 구워먹어봐야겠다 했는데, 딱 오늘이네요.
몹시도 허기 진 배에 삼겹살 2인분과 돼지생갈비 1인분을 기분 좋게 채워 넣고 둘이 팔짱 끼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강진 3일차 아침.
오감통 먹거리장터 내 <다올우리콩두부사랑>에서 두부김치찜으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합니다.
두부전골과 고민하다 결정을 했는데, 묵은지 맛에 푹 빠진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강진읍을 걸었습니다.
사의재 방면으로 난 한적한 골목길에서 한 컷.
딸아이에게는 처음인 <사의재>.
봄이나 가을 평상에 앉아 따땃한 햇살 맞으며
다산도 좋아했다는 바지락전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는 낭만이 있는 곳이지요.
딸아이가 곧 성인이 되면 마주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있겠지요.
사의재에서 영랑생가 방면으로 넘어가 봅니다.
아직도 처음 들어서는 강진의 골목들이 많네요.
낯선 길은 언제나 설렙니다.
영랑생가 앞 <시문학파기념관>에 들러 2층에 마련된 전시실을 들러봅니다.
1930년대를 주름 잡았던 시인들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전라남도 강진을 대표하는 시인, 영랑 김윤식.
강진을 돌아다니다보면 상호명에 유난히 많이 쓰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다산, 모란, 영랑 등이지요.
시문학파기념관을 나오면 바로 <영랑생가>로 이어집니다.
아무도 없는 한가한 영랑생가에서의 오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동안 툇마루에 걸터 앉아있었습니다.
어슬렁거리기 좋은 오후, 강진입니다.
버스터미널 앞 <메가커피>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시원한 아이스티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네요.
오후 두 시가 살짝 넘어 있는 시간.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해서 머리를 열심히 굴려봅니다.
버스시간표를 확인해보고 좋아, 그래, 가보자.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마량행 버스에 몸을 싣고 중저마을 정류장에서 하차해 <가우도>에 왔습니다.
청자다리를 건너 바다로 가는 두꺼비바위를 만나고
바닷가 벤치에서 쉬고 있는 영랑을 만나 함께 사진도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강진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껏 시원해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도암면에서 건너오는 다산다리 중간까지 다녀와
다산과 그 아들의 상봉 장면을 형상화 해놓은 조형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갑니다.
천리 머나먼 타향에 유배 온 아버지와 그 아비를 찾아 달려온 아들의 만남.
그 아버지의 심정과 그 아들의 마음을 짐작해 보면 살짝 눈시울이 젖기도 합니다.
다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돌아나오는 길, 데크 중간에 잠시 앉아 석양에 물드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이제 갓 스물이 되어가는 딸아이와 이제 반백년을 넘게 살아가는 나는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량에서 오후 5:35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강진버스터미널에 돌아옵니다.
딸아이와 처음 즐겨보는 버스여행.
덜컹거리며 가는 나란히 앉은 버스 안은 따뜻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강진에 머무는 중 가장 많이 신세를 진 <25시해장국>에서 백반으로 해결을 합니다.
늘 혼자 앉아 식사를 하다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를 하니 사장님도 뭔가 기분이 좋으신지 따님이세요,
물으시며 인자하신 미소를 지어주십니다.
여느 때보다 맛있게 식사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역시 부모인지라 뿌듯합니다.
강진에서의 마지막 날은 오전 내내 숙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헤어질 준비를 하고 짐을 챙기고 나와 <홍춘이보리밥>에서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합니다.
올라가면 아직 끝나지 않은 대학입시로 또 버거운 일상들이 이어지겠지요.
물론 강진에 좀더 머물러 있을 나에게도 만만치 않은 시간들이 남아 있습니다.
늘 무뚝뚝한 일상 앞에 늘 슬기로운 우리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오후 4시 버스로 딸아이는 떠나고, 허전한 마음에 무심코 강진향교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딸아이의 열아홉 번째 생일 선물로 안겨준 강진에서의 3박 4일은 어떤 기억으로 그녀의 머리에, 가슴에 남게 될까요.
저물어 가는 2022년 멋진 추억을 남겨 다행입니다.
서로에게 멋진 선물 같은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여전히 낯선 길은 설렘을 줍니다.
다시 홀로 낯선 길을 찾아 떠나야 하겠습니다.
ps. 숙소에 돌아오니 딸아이가 남기고 간 선물이 하나 놓여 있네요.
그녀의 삶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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