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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in life

12화. 집으로 가는 길

by 강진호프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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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을 떠난 버스*는 바로 고속도로에 오르지 않고 국도를 따라 북진한다.

단아한 절집 무위사를 품은 성전을 지나 영암을 들어서서 마주하는 월출산의 모습은 웅장하기 이를 데 없어 눈을 떼기가 힘들다. 월출산이 물러나고 버스는 영산포를 지나 나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곰탕집들이 지척인데, 잘 삭힌 홍어 한 점에 막걸리 한 모금이면 입안은 천국이지. 언제 한번 쉬어가도 좋겠는데. 빛고을 광주를 서쪽으로 에둘러 달리던 버스는 옐로우시티 장성을 지나며 황룡강을 건넌다. 장성물류IC에서 올라선 길은 고창담양고속도로로 이어지고 찬란하던 세상은 이윽고 빛을 잃는다. 부안을 지날 때면 그 자리를 가늠해보는 백산은 그 모습 그대로 잘 있겠지.** 징게맹게 너른 들과 채만식의 <탁류>가 흘러들던 군산도 몇 개의 불빛으로 흐른다. 세 시간 만에 도착한 대천휴게소에서 좋아하지만 통 먹을 기회가 없던 통감자구이를 소금 솔솔 뿌려 먹는다. 출출함을 채운 버스는 광천 지나 처가가 있는 홍성을 곁에 둔다. 이름도 예쁜 해미를 뒤로 서산 지나면서는 개심사 생각이다. 지난 여름 무너져 있던 범종각은 다시 몸을 세웠는지. 당진은 포구와 성지순례길이 있어 좋다. 서해대교를 오르면서 승용차였다면 볼 수 없었을 평택항의 야경이 눈 아래 펼쳐져 마치 덤을 얻은 기분이다. 서평택JC에서 평택시흥고속도로로 폴짝 뛰어 넘어 시화호를 지나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영동고속도로. 곧장 가면 부천인데 버스는 인천으로 잠시 방향을 튼다. 팔 할의 승객들을 부려놓고 미적대던 버스는 이내 마지막 도착지 부천으로 내달린다. 다섯 시간 십오 분. 그럭저럭 빨리 왔다. 날도 그리 춥지 않고 좀 걸어볼까. 저녁 식사를 걸렀는데, 무얼 좀 먹어야 할 것도 같고. 며칠 만이지? 새끼발가락이 계속 안 좋네. 구시렁대다 보면 집이다. 내내 불고 있던 바람이 슬며시 잦아든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경기도 부천까지 운행하는 버스. 하루에 한 번 오후 4시에 출발한다.

**조선말 동학농민운동 당시 부안 야트막한 동산에 수천명의 동학농민군이 집결했다. 흰 옷을 입은 그들이 서있을 때는 온산이 하얗게 보였고, 그들이 앉아 있을 때는 손에 들려 있던 죽창으로 온산이 온통 대나무 숲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서면 白山, 앉으면 竹山이다.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한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기형도, '밤눈'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11화. 세한도(歲寒圖)

기차가 청평역을 지나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좌석 등받이를 한껏 눕히고 얼굴 가득 세차게 몰아치는 눈발을 맞았다.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은 박현수의 였다. 밤새 몇 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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