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탓인지 온화한 겨울
까끔 불어닥치는 북극 한파는 매우 매섭게 다가섭니다
영하 10도 아래로 수은주가 뚝 떨어지고 있던 어느 날, 피곤함에 늦잠을 자고
문득 일어나 간밤에 수놓았던 충남 태안으로의 겨울여행을 떠났습니다
겨울 바다가 그곳에 있을 것이고 그리고 바로 그 곁에
무수한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을 모래언덕이 있을 것입니다
서산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나서 태안으로 향하는데
출출함이 먼저였는지 냉면 생각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동시에 맞아 떨어졌는지
태안 읍내에 들어가 식사를 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서산시 부석면으로 경로를 살짝 비틉니다
잠시 에둘러 막연한 그리움 하나를 집어 들어볼 요량입니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냉면집인데 좀처럼 연이 닿지 않더니
이렇게 불쑥, 자연스럽게 끼어듭니다
한번 가본 적 없는 식당 하나가
몹시 그리웠던 그러나 잊고 지냈던 옛 연인처럼
불쑥 떠오르다니요
달려가 조용히 냉면 한 그릇을 받아들어 잘 먹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충청남도 태안군 신두리해안사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구(모래언덕)로
'사막지역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문화재청홈페이지)을 지닌 곳
사막엘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막이 없으니 사막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이곳 사구를 찾아왔습니다
겨울에 더 잘 어울리리라, 혼자만의 생각은
혼자만일지라도 옳은 생각이었다 생각합니다
거센 바람에 거침없이 몰아치는 겨울바다의 파도와도 잘 어울리고
그리고 쓸쓸하거나 가난한 생각들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모래와 바다와 바람 사이에서 나부꼈습니다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신두리해안사구에서 한 40여분 차를 달리면 도착하는 안흥항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꽤나 알려진 항구인 듯 합니다
비릿한 바다내음, 갯내음 맡으며 부둣가를 거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속에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표정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왠지 따뜻하게 다가오고는 합니다
그러나 강풍이 몰아치고 있는 안흥항은 썰렁합니다
상가 건물들만이 수척한 모습으로 바닷가를 훔쳐보고 있습니다
안흥나래교 너머 지는 해를 마저 보내놓고
뜨끈하고 시원한 바지락해장국으로 속을 데우고 귀갓길에 오르려는데
아쉽게도 해장국집은 영업을 막 접었습니다
늦은 아침 집에서 나올 때에도 빈 속이었는데 이제
돌아가는 길도 헛헛한 뱃속입니다
헛헛, 웃으며 즐겁게 온 길을 되짚어 달려갑니다
겨울, 인상적인 태안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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