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수요일에 휴무가 잡혔습니다
마음 먹은 대로 차를 몰아 홀로 나들이를 나섭니다
목적지는 충청남도 서산의 작은 절집
개심사(開心寺)에 올라 잠시 앉았있다 오려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해미읍성 앞 순댓국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읍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생각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서산IC로 내려서면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입니다
용장리라는 조용한 마을에 닿지요
지방소멸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요즘
'조용한'이라는 표현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한적하고 왠지모를 따스한 느낌의 마을이 좋아
서산을 여행할 때마다 잠시 차를 세우고는 합니다
한 시간이 넘는 운전의 피로감도 씻어내고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매만지기도 하지요
버스 매표소를 겸하고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구입해 가을 햇살 속을 걸어
느티나무 아래로 들어갑니다
수령 오래된 나무는 커다란 품으로
햇살과 그늘을 적당하게 섞어
나그네의 쉼을 어루만져 줍니다
높은 산보다는 큰 산이라는 표현이 더 좋고
나무도 참 크다는 말이 더 정감 가고 좋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커피 한모금에
우물우물 간식을 섭취해봅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기 시작합니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벽화를 구경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이마와 볼에 와 닿는 따스한 가을 볕이 부드럽습니다
바람소리에 저 멀리 촌부들의 대화 소리가 수런수런 섞여 옵니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이 조용한 시간
늘 걷고 있던 자리에서 잠시 사라지고 있는 중입니다
전 우주적인 무관심 속을
바람 따라 햇살 따라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을 때
잠에서 막 깬 아내가 휴대폰 너머로 소식 하나를 전하고 사라집니다
살다보면 종종 접하게 되는 일들 ..
지금은 문을 닫은 양조장까지 걸어가 봅니다
그곳에는 맛있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건너편 인도에 서서 스읍 입맛을 다시기만 합니다
언제 이 벽화 앞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네요
차로 돌아와 다시 길에 오릅니다
개심사로 가는 647번 지방도 양 옆으로는 목초지대가 펼쳐집니다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지요
운이 좋으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와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봄에는 또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들이 한가득
황홀하게 벚꽃들을 뱉어내는 길이기도 합니다
벚꽃 흩날리는 봄날
이 길을 달리는 건 행운이고 또 행복한 일입니다
개심사로 꺽어지기 전
문수사로 휘어드는 이정표가 먼저 나타나는데
오늘은 무심코 핸들을 그쪽으로 틀어봅니다
처음 들어서보는 길인데요
가보지 않은 길들은 언제나 궁금하기만 합니다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종종 예쁜 성당이나 교회 그리고 절집들을 찾아다닙니다
자연과 잘 어울어지는 곳이면 더욱 좋지요
그곳이 절집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어디든 들어가 마음이 동하면 두 손을 모으기도 합니다
누구나 절실한 기원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문수사를 둘러보고 내려옵니다
소박하면서 수수한 절집 문수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빨간 단풍나무잎이 일주문 앞에서 배웅을 해주고 있네요
내년 봄 쯤 다시 한번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산에 가면 형을 닮은 절이 하나 있어'
라고 근 30년 전
같은 배움의 길에 있던 청춘 하나가 이렇게 말을 던졌습니다
그 청춘과 헤어짐을 갖은 후에 그 절을 찾아 보았지요
그렇게 서산 개심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아직까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만
마음 속에 풍진이 일 때마다 찾는 곳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어지러워서가 아니라
하나의 기원이 있어 가슴에 고이 담아 출발을 했습니다
도착하기 전 아내가 전한 소식으로
다른 기원 하나를 더 보태 불공을 드렸습니다
심검당으로 돌아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개심사국화정원축제>가 열리고 있어 앞마당이 가을꽃들로 가득합니다
조용히 서성거려 볼 마당이 좁아졌네요
작년 여름 자연 재해 탓인지 아님 계획된 것이었는지
무너져 있던 범종각도 위치를 바꾸어 멀끔히 새로 지어져 있습니다
이래저래 살짝 어색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좀 앉았다 가야겠지요
길게 늘어놓은 나무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어봅니다
무엇을 떠올릴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비울 수 있다면 모두 비워버리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지요
한동안 앉았다 여기저기 눈맞춤을 하고 일어섭니다
개심사에서 끌고온 길은 서산시 해미면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허겁지겁 배를 채울 시간이이 왔습니다
읍내리 해미읍성 앞에 좋아하는 순댓국집이 있어요
지난해 여름 장마에 처음 맛을 보고
서산 여행 시 찾을 식당 목록에 올려 놓았지요
순댓국도 입에 잘 맞지만 찬으로 함께 나오는
돼지머리의 껍질 쪽을 눌러 만든 듯한 편육이 졸깃졸깃하면서
참 별미입니다
언제 이것저것 시켜 소주 한잔해야지 하는데
늘 자동차가 발목을 휘어 잡아요
아예 하룻밤 묵어가야 할까요
순댓국은 격하게 푹푹 퍼 먹고
세 조각의 편육은 살살 아껴 먹습니다
따로 메뉴에 포함 해 단품으로 내주셔도 좋을 듯한데
영업 하시는 분들의 생각이나 여건이 또 다를 수도 있겠지요
좋은 음식은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줍니다
가끔은 따뜻한 말 한 마디보다
입에 딱 맞는 음식에 더 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조금 더 애를 써서 이왕이면 좋은 음식을 먹어야지요
맛있게 한 뚝배기를 비운 후에는
지척의 해미읍성이 좋은 산책터가 되어줍니다
내버려 두어도 소화는 무섭게 잘 되겠지만
소화나 시켜볼까 중얼거리면서 읍성을 둘러봅니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뜻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고려조의 정해, 여미 두 현이 합해지면서 한 자씩 따낸 이름이라는데
언제나 읊조려보아도 참 어여쁜 이름입니다
해미읍성의 어여쁜 이름에는 잔인한 피의 역사도 묻어 있는데요
조선말 천주교 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투옥되어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읍성 한가운데의 회화나무에는 아직도 그날들의 비참한 흔적들이 남아있어
많은 성지 순례자들의 이목을 받고 있지요
전해지는 많은 기록들을 읽어보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전히 해학적이신 문지기 아저씨와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가볍게 나선 가을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고속도로 막히기 전에 서둘러야지 하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잠시 잊고 있던 수만가지 얽힘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그것들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지
힘차게 상경길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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