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이 피던 삼월이었다네
광주일고 동창생 몇 모여 꽃향기 마셨다네
죽은 광석이 생각 불현듯 떠올라
소줏잔 나누다 말고 광석이 고향집 찾았다네
해남군 제곡면 방춘리
텅 빈 세칸 집은 낡고 쓸쓸하여
방금 분 봄바람에 쓸려 날아갈 것만 같았다네
곡수 받던 사람들 광석이 이야기에 눈물 글썽이네
그 자석 세상 효자고 수재였는디
앞산 뒷산 뭉게구름 산그늘도 가슴 울먹였다네
광석이 엄니 정리댁 소주 서 말 한숨에 마셨다네
울면서 지아비와 험한 세상 버리자고
군대 있던 작은 아들 면회하고 열차에서 뛰어내렸다네
아이고 아이고 무정한 세상
죽음조차 뜻대로 안되는구나
금촌 도립병원에서 정리댁 아들 대신 살아났다네
아들 모습 남아 있는 고향땅엔 돌아갈 수 없어
아픈 다리 두들겨 패며 임진강 건넜다네
그곳 지뢰밭에 논농사 부쳐먹으며
발목지뢰야 발목지뢰야
이 내 발에 콱 밟혀라
죽은 내 아들 저승에서나 만나보자
하염없는 노랫소리 한 십년 흘렀다네
광석이 고향집 다녀온 친구들 동창회 열었다네
목련꽃 시나브로 지는 교정 한 귀에
광석이 흉상 하나 세우고 싶었다네
검사도 되고 판사도 되고 의사도 되고
교수도 되고 사장님도 되고 더러는 기업체의 중간간부도 되어
동창생 승용차 몰고 교정에 들렀다네
그 동창생들 추모사업 아무 흥미 없었다네
창 밖은 목련꽃 피는 봄날이었다네
아가
무슨 잠이 이리도 깊으냐
깨어나 에미랑 말 좀 해보자
정리댁 한숨소리 목련꽃처럼 펑펑 피어났다네
* 故 김광석, 1980년 5월 21일 전남 도청앞 광장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함. 당시 26세 법학도.
- 곽재구, '목련사설' (「참 맑은 물살」 창작과비평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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