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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빛나는 것들

문학. 최순우 에세이 <부석사 무량수전> :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

by 강진호프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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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 최순우, '부석사 무량수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신서1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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