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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발바닥은 두껍고 넓다. 낙타는 그 발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디딘다. 낙타는 지그시 땅바닥을 밟는다. 낙타의 종족은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수만 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견딤과 참음의 형질이 유전되어서 갓 태어난 낙타 새끼조차도 늙음의 표정을 지니고 있다. 호랑이나 사자, 원숭이의 어린 새끼들은 저네들끼리 장난치고 까불고 뒹구는데, 낙타의 새끼들은 별로 부산을 떨지 않는다. 견딤과 참음의 수만 년 세월 속에서 낙타는 구도자나 순례자와 같은 운명의 표정에 도달했을 것이다. 낙타는 목밑의 피부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를 높이 쳐들어서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갈 길이 멀기 때문일 것이다. 낙타는 주저앉아서도 먼 곳을 보고 있다.
-김훈, <연필로 쓰기> 'Love is touch, Love is real' 중에서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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