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빼어나긴 하나 장중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중하나 빼어나지 못하다고 합니다
금강산은 그 수려한 봉우리들이 하늘에 빼어나 있되 장중한 무게가 없고,
반면에 지리산은 태산부동의 너른 품으로 대지를 안고 있되 빼어난 자태가 없어 아쉽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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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천여 미터의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보이는 덕천강가에는
지리산만큼 무거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대답이 없는 고고한 선비 남명 조식의 산천재가 있습니다
퇴계와 더불어 영남유학의 쌍벽이었으되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지리산 자락에 은둔하였던 남명은
한 시대의 빼어난 봉우리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정신사에서 그의 위상이 차지하는 무게는 가히 지리산의 그것에 비길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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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 것,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론을 거침없이 갈파한 남명
벼슬아치는 가죽 위에 돋은 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는 탐관오리들을 질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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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거창에 들러 거창고등학교를 찾았습니다
휴일이라 인적도 없는 교정을 돌아보다가 강당의 벽면에 다음과 같은 직업선택의 십계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한 시대의 빼어남을 지향하는 길을 가지 말고 장중한 역사의 산맥 속에서 익어가는
숯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기계의 부품이 되지 말고 싱싱한 한 그루 나무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무너지는 일이 없는 지리산의 장중함이면서 동시에 남명의 철학이었습니다.
-신영복, '빼어남보다 장중함 사랑한 우리 정신사의 지리산-남명 조식을 찾아서' (「나무야 나무야」 돌베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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