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창고, 빛나는 것들25 가요. 손노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1954) *시기별로 당대를 대표하는 인기 가수들이 새로운 해석의 리메이크작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왔고, 2001년에는 제목을 빌린 영화 「봄날은 간다」가 개봉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전쟁 직후의 정.. 2022. 4. 30. 문학. 이상국 詩 <뿔을 적시며> : 아버지는 나를 멀리 보냈는데 비 오는 날 안경쟁이 아들과 함께 아내가 부쳐주는 장떡을 먹으며 집을 지킨다 아버지는 나를 멀리 보냈는데 갈 데 못 갈 데 더듬고 다니다가 비 오는 날 나무 이파리만한 세상에서 달팽이처럼 뿔을 적신다 - 이상국, '뿔을 적시며' (「뿔을 적시며」 창비시선 342. 2012) 2022. 4. 28. 드라마. 김석윤 연출 박해영 극본 <나의 해방일지> 3화 : 해방, 할 겁니다 김석윤 연출 박해영 극본 JTBC 드라마 3화 직장 내 동아리 활동을 집요하게 권유하는 행복지원센터에 불려온 미정, 상민, 태훈 난감한 표정으로 상황을 논의한다 s#. 대기실 미정 : 우리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해방클럽 .. 전 ..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 꼭 갇힌 것 같아요. 속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구 답답하구 ..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상민 : 해방 .. 좋다! s#. 센터 안 향기 : (당혹스럽다) 어 .. 세 .. 분이서? 상민 : 네. 향기 : (계속 당혹스럽다) 어 .. 해방이 뭐하는 거에요? 상민 : 대한민국은 1945년에 해방됐지만 저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향기 : (끝까지 당혹스럽다) 아니, 뭐 .. 아, 그래서.. 2022. 4. 18. 문학. 최영미 詩 <선운사에서> :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선운사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2022. 4. 4. 문학. 정호승 <슬픔을 위하여> :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 아이를 사산한 그 여인에 대해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저 새벽별이 질 때까지 슬픔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말라 우리가 슬픔을 사랑하기까지는 슬픔이 우리들을 완성하기까지는 슬픔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으며 기도하라 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라 -정호승 '슬픔을 위하여'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2022. 3. 24. 영화. 임순례 감독 <리틀포레스트> : 그 모든 건 타이밍이다 혜원 : (내레이션) 봄에 처음 심는 것 중에 감자가 있다 아직 춥지만 땅속 온기는 감자 싹을 품어 밖으로 틔워준다 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그 모든 건 타이밍이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엄마 목소리)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 2022. 3. 19. 드라마. 정지현 연출 권도은 극본 <스물다섯 스물하나> 10화 :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민채 : 엄마 우리도 여행 가면 안 돼? 나 방학 얼마 안 남았는데. 중년 희도 : 이 시국에 어딜 가, 확진자 2천 명 넘은 거 못 봤어? 좀만 참아. 민채 : 나 6학년 때 콩쿠르 때문에 수학여행 빠지고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수학여행 취소되고 .. 살면서 수학여행도 한 번 못 가봤다고. 중년 희도 : 나는 갔냐? 나도 운동하느라 한 번도 못 갔어. 민채 : 엄마는 갔잖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바다. 엄마 앨범에서 사진 봤어. 중년 희도 : 내가 고등학교 때 바다를 갔다고? 민채 : 설마 기억 못하는 거야? 그 엄마 앨범에 맨날 등장하는 사람들이랑. 중년 희도 : 걔네랑 내가 바다를 언제 갔어? 기억 안 나는데? 민채 : 아니 병원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가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중년 희도 : 바.. 2022. 3. 17. 영화. 이준익 감독 <변산> :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만 있다면 선미 : (내레이션) 내가 노을 마니아라고 혔지? 나한테 노을을 발견시켜 준 사람이 바로 너여 이 동네서 태어나 살면서 수도없이 봐 온 노을인디 난 노을이 그런 건지는 그때 처음 알았어 장엄하면서도 이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만 있다면 더이상 슬픔이 아니겄다 생각하믄서 넋을 잃고 보는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자는 언제부터 저 무덤에 앉아 혼자 노을을 보아 왔을까? -이준익 감독 (2017 제작) 중에서 2022. 3. 14. 문학. 신영복 <빼어남보다 장중함 사랑한 우리 정신사의 지리산-남명 조식을 찾아서> :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 금강산은 빼어나긴 하나 장중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중하나 빼어나지 못하다고 합니다 금강산은 그 수려한 봉우리들이 하늘에 빼어나 있되 장중한 무게가 없고, 반면에 지리산은 태산부동의 너른 품으로 대지를 안고 있되 빼어난 자태가 없어 아쉽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해발 2천여 미터의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보이는 덕천강가에는 지리산만큼 무거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대답이 없는 고고한 선비 남명 조식의 산천재가 있습니다 퇴계와 더불어 영남유학의 쌍벽이었으되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지리산 자락에 은둔하였던 남명은 한 시대의 빼어난 봉우리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정신사에서 그의 위상이 차지하는 무게는 가히 지리산의 그것에 비길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 2022. 3. 8. 문학.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 : 견딤과 참음의 수만 년 세월 낙타의 발바닥은 두껍고 넓다. 낙타는 그 발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디딘다. 낙타는 지그시 땅바닥을 밟는다. 낙타의 종족은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수만 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견딤과 참음의 형질이 유전되어서 갓 태어난 낙타 새끼조차도 늙음의 표정을 지니고 있다. 호랑이나 사자, 원숭이의 어린 새끼들은 저네들끼리 장난치고 까불고 뒹구는데, 낙타의 새끼들은 별로 부산을 떨지 않는다. 견딤과 참음의 수만 년 세월 속에서 낙타는 구도자나 순례자와 같은 운명의 표정에 도달했을 것이다. 낙타는 목밑의 피부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를 높이 쳐들어서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갈 길이 멀기 때문일 것이다. 낙타는 주저앉아서도 먼 곳을 보고 있다. -김훈, 'Love is touch, Love is real.. 2022. 3. 7. 문학. 윤대녕 소설 <상춘곡 1996> : 나는 벌써 보고 가네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문득 당신께 편지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전부터 나는 당신께 한 번쯤 소리나는 대로 편지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막걸리 먹고 취한 사내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내게 무슨 깊은 한이 있어 그런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매양 또 주저하다가 세월만 흘려보낼 것 같아 딴에는 작정을 하고 쓰는 셈입니다. 선운사에 내려온 지 오늘로 꼭 나흘째입니다. 이곳은 미당을 길러낸 땅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굳이 따지자면 당신 고향이 미당의 고향보다 선운사에서 보면 훨씬 가깝지요. 짐작하시겠지만 형편이 좋아 관광을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열흘 전, 실로 7년만에 당신과 해후했을 때 당신은 내게 벚꽃 얘기를 하셨습니다. 4월 말쯤.. 2022. 3. 6. 문학. 도종환 <희망> : 꽃이 꽃에 닫는 느낌으로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별이 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오는 그대를 꽃이 꽃에 닿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대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섰듯이 알맞은 시기에 그대를 떠나라 한다 그대가 있어서 소리없는 기쁨이 어둠속 촛불들처럼 수십개의 눈을 뜨고 손 흔드는데 차디찬 겨울 감옥 마룻장 같은 세상에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아직도 내가 그대 곁을 맴도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 사는 동네와 그 두터운 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아궁이가 스스로 불씨를 꺼버린 방에 앉아 재마저 식은 질화로를 끌어안고 따뜻한 온돌을 추억하는 일이라 한다 매일.. 2022. 3. 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