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583 5화. 사진전 입선 한 사진전에서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입선을 받았다. 상장과 함께 당선작들이 실린 작품집을 소포로 받았을 때에는 사뭇 기분이 좋았다. 마침 식구들이 없었을 때라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둘까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식구들의 반응은 심심하게 곧 끝이 났다.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생각이 나 입선 소식을 전했다. 친구에게는 그날 내가 한 이야기 중 가장 한심한 이야기로 들렸나보다. 그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뛰우는 기형도의 시*가 떠올랐다. 아, 기형도여! 내년에는 특선 정도를 목표로 몰두해 보아야 겠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반응은 심심하고 표정은 가관이겠지만,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나. *기형도, '위험한 가계·1969' (「입 속의 검은 잎」, .. 2022. 11. 26. 4화. 정숙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박인환, 중에서 그 사람과 이별을 하고 취업 공부 한답시고 앉았던 도서관.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하얀 벽 중앙에 그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고창 선운사였던가. 동백을 보러간 날에도 만세루 지나 대웅전 뒤꼍으로 다가갈 때 동백보다 먼저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도 깜짝깜짝 놀라고는 했다. '선생님, 정수기 컵 떨어졌어요.' 그래서 나는 시인의 저 노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아픔과 함께 서서희 희미해져 갔지만 이름만은 잊을 수가 없다. 이참에 그 사람의 안녕을 빈다. 나는 노트 한가운데에 한 줄의 선을 긋고 왼쪽에는 그 동안 얻게 된 것을 쓰고 오른쪽에는 잃어버린 것을 썼다. 잃어버린 .. 2022. 11. 25. 3화. 윈터 짙어가는 가을, 종종 겨울이 까치발 들고 인사를 건네고는 한다. 겨울을 좋아한다. 생일이 있기도 하고 눈이라도 내리면 아직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언가를 마무리하기에도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시의적절한 계절인 겨울. 날은 추울 수록 좋고 외투는 따뜻할수록 좋다. 따뜻한 외투 같은 겨울이 오늘 아침에도 해맑게 인사를 건넨다. 「별일 없으시죠, 사랑해요, 여러분.」 올 겨울은 기억 속의 겨울보다 더 추울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가만있어보자, 내 두터운 겨울 외투가 어디에 있더라. 「어두운 마음을 갖고서는 어두운 꿈밖에 꿀 수 없어. 아주 어두운 마음으로는 꿈조차 꿀 수 없지.」 돌아가신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내가 최초로 한 일은 팔을 뻗쳐 그녀의 눈꺼풀을 가만히 감.. 2022. 11. 24. 2화. 오일장 아침마다 반 쪽의 사과를 깨물어 먹는 소리는 경쾌하다. 삶은 고구마 반 개를 마저 먹고 내린 커피로 입가심을 한다. 청명한 가을 하늘의 응원을 받으며 오일장 구경을 나간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들이 나와 앉아 온갖 역경을 이겨낸 또 다른 가을들을 부려놓는다. 무엇 하나 탐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혈당 체크를 시작한 지 나흘째. 안 좋은 일들은 왜 한꺼번에 몰려오는가. 투정을 부려보지만 날카로운 화살촉은 결국 무딘 나를 겨눈다.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가을, 나의 오일장은 일찌감치 파장이다. 8년 2개월, 그는 그 불모의 싸움을 계속했고 그리고 죽었다. 1938년 6월의 어느 맑게 개인 일요일 아침, 오른손엔 히틀러의 초상화를 쥐고 왼손엔 우산을 펼쳐 쥔 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것.. 2022. 11. 23. 내 삶 자리가 강진인 이유 - 무위사, 백운동원림, 강진다원, 월남사지 가을비가 떨어집니다. 우산을 바쳐 들고 걸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표를 끊고 오전 10시 30분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어봅니다. 오늘은 월출산을 향합니다. 무위사 극락보전을 바라보고 백운동원림을 거닐어 볼 겁니다. 짙은 초록의 다원과 웅장한 월출산 봉우리들에 감탄하며 월남사지까지 걸어 오래된 석탑 곁에 한나절 머물다 돌아올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장마철에는 자동차가 있어 편리하게 돌아보고 왔지만 이번에는 걷거나 버스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더욱 홀가분하기도 할 겁니다. 강진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35분 정도를 달려 무위사 앞에 도착을 합니다. 툭 떨어져 내린 나그네는 바쁠 것이 없어 한동안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주한 극락보전은 여전히 민낯입니다. 이른 아침 .. 2022. 11. 22. 1화. 어린왕자 20년간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국어과목을 가르쳤다. 그 후 3년간 식당을 운영했고, 부족한 자금과 코로나 등으로 빚만 남기고 폐업을 했다. 1년 가까이의 방황을 마치려 아내에게 뮤직바 창업을 이야기 했으나 거절당하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24년의 시간이 끝나버렸다. 지금, 나는 말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이 되어 있지 않고 말을 마치는 시점에도 사태는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결국 문장을 쓴다는 것은 자기요양의 수단이 아닌 자기요양에의 조촐한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서계인 옮김, 청하, 1991) 2022. 11. 22. 대수능 즈음하여 부천 상경기 11월 16일 수요일. 매우 예상 외로 일이 일찍 마무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4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겠어요. 숙소 들어가 간단히 씻고 짐을 챙겨 나옵니다. 생선구이가 나오는 백반에 막걸리 한 병 즐겁게 비우고 강진읍을 여기저기 둘러봅니다. 일정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여유있는 자투리 시간은 일상을 살찌우는 단백질 같습니다. 강진버스터미널에서 하루에 한 번, 4시에 출발하는 부천 행 버스를 기다립니다. 시간이 맞지 않을 때에는 목포로 가서 부천행으로 갈아타고는 했는데요. 오랜만에 강진 발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나주와 인천을 들러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을 합니다. 날도 춥지 않아 집까지 걷습니다. 봄에는 초록 보리물결이 보기 좋았고 가을이면 메밀꽃이 살랑이던 시청 옆 공터에는 이제 높은 .. 2022. 11. 21. 강진 모란추어탕의 추어탕 (feat.토란) 가끔 강진군도서관에서 작업을 하는 날이면 조금 걸어 당도하는 모란추어탕에서 추어탕으로 식사를 하고는 합니다. 음식도 식당도 깔끔해서 꽤 인기가 좋은 식당이지요. 영랑생가와도 가까워 한적한 골목에 위치해 있지만 늘 손님들이 붐빈답니다. 가을 다 가기전에 추어탕 한 그릇 하고 옵니다. 뚝배기 가득 담겨나와 양도 많습니다. 추어탕. 9천원.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의 반찬 4종. 이날은 토란 두 개를 접시에 담아 내주시네요. 부드러운 시래기가 가득 들어 있는 추어탕입니다. 거슬리는 맛없이 착하고 순한 국물이 입맛을 당깁니다. 중간에 토란도 하나 먹어봅니다. 식감은 물고구마와 비슷하고 맛은 참으로 담백하군요. 밥을 조금 말아 마무리를 합니다. 늘 잘 먹고 나오는 모란추어탕. 강진에 오신다면 한번은 가볼만한 식당입니다. 2022. 11. 20. 강진 조선제일국밥의 모둠국밥 맑은 국물이 개운한 강진읍 조선제일국밥의 모둠국밥입니다. 오일장이 열리는 강진시장과 가까이 있어 접근성도 좋지요. 점심시간에는 많은 손님들이 몰리기도 합니다. 모둠국밥. 9천원. 따로 나온 부추는 몽땅 청양고추는 적당히. 돼지 머리고기와 내장 그리고 선지가 들어 있습니다. 콩나물도 한 움큼 숨어 있지요. 새우젓이나 후춧가루는 테이블에 마련되어 있지 않고 부탁하면 가져다 주십니다. 반찬 코너에서 직접 가져와도 되고요. 국물이 제법 간간해서 따로 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뚝배기 금방 비우지요. 이제 굴의 계절이 시작되는 군요. 다음에는 굴국밥으로 가겠습니다. 2022. 11. 19. 강진 국민동태탕찜의 섞어탕 강진읍 골목들을 돌아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오일장을 시작으로 사의재 쪽을 돌아보고 영랑생가까지 걸었던 날 이른 저녁 식사를 무엇으로 할까 즐거운 고민 끝에 칼칼한 국물 생각에 도서관 옆 우체국 앞 국민동태탕찜으로 걸어갔습니다. 늘 정갈하게 차려지는 6찬. 섞어탕 1인분. 9천원. 칼칼시원한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맛있게 먹어볼까요. 동태 한 마리 온전히 들어있는 건 아닌 듯하고 머리, 몸통, 꼬리 이렇게 세 토막이 들었지요. 곤이와 이리 두부 그리고 쑥갓과 콩나물도 보입니다. 황태껍질일까요. 쫄깃하게 무쳐내 밥반찬으로 좋았습니다. 상큼한 동치미 국물로 마무리를 하면 입안이 개운하지요. 2022. 11. 18. 강진 칠량면 제일식당의 백반 강진군 칠량면 청자식당에서 훌륭한 8천원 백반을 접해본 적이 있습니다. 혼자 미안할 정도로 거한 밥상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지인들과 함께 제일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이곳도 음식이 좋다는군요. 예약을 하고 갔더니 이렇게 한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메인이 되는 음식 두 접시는 보온을 위해 위생비닐로 덮어놓았네요. 시각적으로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입니다. 4인상인데 주메뉴인 생선과 제육볶음의 양이 넉넉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리필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냥 먹었네요. 전체적으로 반찬들은 재료들도 신선해 보였고 맛도 좋았습니다. 가우도나 마량 가는 길에 식사처가 필요하다면 청자식당과 함께 들러볼만합니다. 잘 먹고 나와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 속을 잠시 거닐어 보았습니다. 2022. 11. 17. 부천 인하찹쌀순대의 국밥과 순대 보통의 순댓국과는 다소 다른 순대국밥. 가끔 이 국물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거마산과 성주산을 자주 오르던 시절 곧잘 들러 배를 채우고는 했던 인하찹쌀순대. 한때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명불허전이라고 부천에서 이만한 국밥 찾아보기 어렵지요. 딸아이와 함께 간 덕에 순대반접시 (7천원)도 주문해 보았습니다. 이집 깍두기 국밥에 매우 잘 어울린답니다. 폭신하고 촉촉한 간과 찹쌀순대. 반주할 때 좋겠네요. 뚝배기에 담겨나온 국밥(보통). 안에 빨간 양념이 담겨 있고 숟가라가 하나가 푹 꽂혀 나온답니다. 밥은 토렴되어 국물이 잘 베어 있고 다 먹을 때까지 온도감이 잘 유지됩니다. 국밥 먹으면서 하나씩 집어먹기 좋은 간. 분주하게 돌아가는 주방. 깍두기와 깍국을 넣어 마지막을 장식할 준비를 합니다. .. 2022. 11. 16.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4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