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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사2

문학. 최영미 詩 <선운사에서> :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선운사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2022. 4. 4.
문학. 도종환 <희망> : 꽃이 꽃에 닫는 느낌으로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별이 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오는 그대를 꽃이 꽃에 닿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대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섰듯이 알맞은 시기에 그대를 떠나라 한다 그대가 있어서 소리없는 기쁨이 어둠속 촛불들처럼 수십개의 눈을 뜨고 손 흔드는데 차디찬 겨울 감옥 마룻장 같은 세상에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아직도 내가 그대 곁을 맴도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 사는 동네와 그 두터운 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아궁이가 스스로 불씨를 꺼버린 방에 앉아 재마저 식은 질화로를 끌어안고 따뜻한 온돌을 추억하는 일이라 한다 매일.. 2022.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