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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9

10화. 별이 진다네(feat.크라잉넛 말달리자) 여행스케치의 를 불러 보셨나요.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벗들이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개 굴 개 굴 찌 르 르 찌 르 르 멍 멍 귀 뚤 귀 뚤. 노래를 정말 못 부르는 나이지만 이 노래만큼은 최선에 최선을 다해서 부르고는 했다. 신도림역 앞 천변의 포장마차에서도 뜬금없는 사장님의 바람잡이로 벌벌 떨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나의 아내가 되기 전의 그녀가 옆에 있었다. 가끔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면 신발 뒤축을 끌며 크게 마을을 한 바퀴 돌고는 하는데, 어쩌다 이 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그 시절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고는 한다. 멀리 와서 돌아보는 그 순간들은 영롱하다. 투명하다. 직장인 되고 월급을 받으면서부터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미친듯이 닥치라고 외치기만 했다... 2022. 12. 2.
9화. 박동훈 처럼 김원석 연출 박해영 극본 TVN 드라마 아내는 인생 드라마라고 했다. 이웃집 아저씨는 꼭 혼자, 어두운 방안에서 본방을 사수한다고 했다. 누구는 주제곡을 들을 때마다 미간 부분을 굵게 찡그리고는 했다. 무엇에 빠져 있었는지 아님 그깟 드라마라 치부해버렸는지, 나는 무관심했다. 세월은 흐르고 TV 리모콘을 틀어쥐고 무엇이 되어주지 못하는 시간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가끔 이 드라마와 마주치고는 했다. 찔끔찔끔 눈이 갔고 가끔 눈시울이 따땃해졌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열흘 남짓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인터넷 플래폼을 통해 첫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정주행을 했다. 며칠 만에 천방지축 헤엄치던 장면들이 잘 마른 북어들처럼 한 줄로 나란히 꿰어졌다. 평범하거나 또는 지독히 불행하거나, 존재감이 없거나 삶의 대부분을 .. 2022. 11. 30.
8화. 살찐 최민식(feat. 고로 씨)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때 나의 별명은 '살찐 최민식'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까지 슥 다가와 영화 잘 봤습니다아, 하고 농을 걸 정도로 찐 별명이었다. 지금은 '최민식'은 가고 '살찐'만 남았지만. 영화 에서 최민식(오대수 역)은 이유도 모른 체 납치되어 사설 감금방에 갇힌다. 방 벽에는 해괴한 남자의 그림과 위의 문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앞에서 누런 이를 드러내며 억지로 웃어 보이는 명배우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성격은 상당히 낙천적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철이 없다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 정도도 괜찮겠다. 지혜롭고 슬기.. 2022. 11. 29.
7화. 운동화 당신 운동화 다 무너졌네 왜 이렇게 빨리 무너졌어 지난 5월 어버이날 즈음 아들은 같은 브랜드의 운동화를 아내와 나에게 선물했다. 가볍고 착용감도 좋아 여느 신발들보다 자주 신게 되었다. 운동화를 신고 여기저기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다섯 달이 지난 지금 운동화는 전체적인 틀이 망가져 있다. 발을 잡아주고 지탱해 주는 힘도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행로들이 버거웠나보다. 새 운동화를 구입하든가 이전에 신던 하이킹화를 다시 꺼내 신어야 하는데 좀처럼 결단이 서지 않았다. 오늘 조금 더 헐렁해진 운동화를 벗어 놓는다. 여보, 이 운동화는 무너진 게 아니야. 꽤 먼 곳까지 다녀왔을 뿐인걸. 「놈들은 중요한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생각하고 있는 척할 뿐이지 ······ 어째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2022. 11. 28.
6화. 노안 아이폰SE(2Generation)의 경우다. 설정에 들어간다. 디스플레이 및 밝기를 클릭. 아래로 내려오면 보이는 텍스트 크기를 누른다. 그러면 유동적 글자 크기 조절을 지원하는 앱은 아래와 같이 선호하는 글자 크기로 조절됩니다는 문구가 나온다. 아래를 보면 눈금이 있고 양 끝에 두 개의 가가 있다. 왼쪽 가는 작은 가이고 오른쪽 가는 큰 가이다. 가운데 있는 하양 공같은 녀석을 오른쪽으로 한 눈금 올린다. 위의 문구가 따라서 커진다. 만족스럽지 않다. 하얀 공같은 녀석을 오른쪽으로 한 칸 더 옮겨본다. 위의 문구가 더 커진다. 됐다. 설정을 나와 내친김에 카카오톡 앱을 찾는다. 오른쪽 상단 설정탭을 누른다. 편집, 채팅방 정렬, 전체 설정 중 전체 설정을 선택한다. 그 다음 화면 클릭. 글자크기/글씨체.. 2022. 11. 27.
5화. 사진전 입선 한 사진전에서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입선을 받았다. 상장과 함께 당선작들이 실린 작품집을 소포로 받았을 때에는 사뭇 기분이 좋았다. 마침 식구들이 없었을 때라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둘까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식구들의 반응은 심심하게 곧 끝이 났다.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생각이 나 입선 소식을 전했다. 친구에게는 그날 내가 한 이야기 중 가장 한심한 이야기로 들렸나보다. 그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뛰우는 기형도의 시*가 떠올랐다. 아, 기형도여! 내년에는 특선 정도를 목표로 몰두해 보아야 겠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반응은 심심하고 표정은 가관이겠지만,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나. *기형도, '위험한 가계·1969' (「입 속의 검은 잎」, .. 2022. 11. 26.
3화. 윈터 짙어가는 가을, 종종 겨울이 까치발 들고 인사를 건네고는 한다. 겨울을 좋아한다. 생일이 있기도 하고 눈이라도 내리면 아직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언가를 마무리하기에도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시의적절한 계절인 겨울. 날은 추울 수록 좋고 외투는 따뜻할수록 좋다. 따뜻한 외투 같은 겨울이 오늘 아침에도 해맑게 인사를 건넨다. 「별일 없으시죠, 사랑해요, 여러분.」 올 겨울은 기억 속의 겨울보다 더 추울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가만있어보자, 내 두터운 겨울 외투가 어디에 있더라. 「어두운 마음을 갖고서는 어두운 꿈밖에 꿀 수 없어. 아주 어두운 마음으로는 꿈조차 꿀 수 없지.」 돌아가신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내가 최초로 한 일은 팔을 뻗쳐 그녀의 눈꺼풀을 가만히 감.. 2022. 11. 24.
2화. 오일장 아침마다 반 쪽의 사과를 깨물어 먹는 소리는 경쾌하다. 삶은 고구마 반 개를 마저 먹고 내린 커피로 입가심을 한다. 청명한 가을 하늘의 응원을 받으며 오일장 구경을 나간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들이 나와 앉아 온갖 역경을 이겨낸 또 다른 가을들을 부려놓는다. 무엇 하나 탐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혈당 체크를 시작한 지 나흘째. 안 좋은 일들은 왜 한꺼번에 몰려오는가. 투정을 부려보지만 날카로운 화살촉은 결국 무딘 나를 겨눈다.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가을, 나의 오일장은 일찌감치 파장이다. 8년 2개월, 그는 그 불모의 싸움을 계속했고 그리고 죽었다. 1938년 6월의 어느 맑게 개인 일요일 아침, 오른손엔 히틀러의 초상화를 쥐고 왼손엔 우산을 펼쳐 쥔 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것.. 2022. 11. 23.
1화. 어린왕자 20년간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국어과목을 가르쳤다. 그 후 3년간 식당을 운영했고, 부족한 자금과 코로나 등으로 빚만 남기고 폐업을 했다. 1년 가까이의 방황을 마치려 아내에게 뮤직바 창업을 이야기 했으나 거절당하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24년의 시간이 끝나버렸다. 지금, 나는 말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이 되어 있지 않고 말을 마치는 시점에도 사태는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결국 문장을 쓴다는 것은 자기요양의 수단이 아닌 자기요양에의 조촐한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서계인 옮김, 청하, 1991) 2022.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