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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in life

6화. 노안

by 강진호프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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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SE(2Generation)의 경우다. 설정에 들어간다. 디스플레이 및 밝기를 클릭. 아래로 내려오면 보이는 텍스트 크기를 누른다. 그러면 유동적 글자 크기 조절을 지원하는 앱은 아래와 같이 선호하는 글자 크기로 조절됩니다는 문구가 나온다. 아래를 보면 눈금이 있고 양 끝에 두 개의 가가 있다. 왼쪽 가는 작은 가이고 오른쪽 가는 큰 가이다. 가운데 있는 하양 공같은 녀석을 오른쪽으로 한 눈금 올린다. 위의 문구가 따라서 커진다. 만족스럽지 않다. 하얀 공같은 녀석을 오른쪽으로 한 칸 더 옮겨본다. 위의 문구가 더 커진다. 됐다. 설정을 나와 내친김에 카카오톡 앱을 찾는다. 오른쪽 상단 설정탭을 누른다. 편집, 채팅방 정렬, 전체 설정 중 전체 설정을 선택한다. 그 다음 화면 클릭. 글자크기/글씨체로 들어가 마찬가지 눈금 위의 하얀 공같은 녀석을 오른쪽으로 밀어 보낸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오른쪽으로. 됐다 싶으면 앱을 닫고 안심한다. 서러워 할 필요는 없다. 시간차가 있을뿐 자연스러운 거니까.

 


 

한여름 동안에 걸쳐 나와 쥐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이 25미터 수영장 하나분 정도의 맥주를 바닥내며, <J의 바Bar>의 바닥 가득 5cm 두께로 땅콩 껍질을 흩뿌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한 여름이었던 것이다. 

<J의 바>의 카운터에는 담뱃진으로 변색된 한 장의 판화가 걸려 있어서 아무리 해봐도 따분하기만 한 시간이면 나는 질리지도 않고 그 그림만 계속 바라보았다. 마치 로드샤하 테스트에라도 사용했음직한 그 도안이 내게는 서로 마주하고 앉은 두 마리의 녹색 원숭이가 공기를 가르는 두 개의 테니스 공을 서로 던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내가 바텐더인 J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는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고 나서는, 그러고 보니 그렇군 하고 기운 없이 대꾸해 주었다.

「뭘 상징하고 있는 거죠?」

내가 그렇게 물어 보았다.

「왼쪽 원숭이가 자네이고 오른쪽이 나야. 내가 맥주병을 던지면 자네가 요금을 던져 보내는 거지.」

나는 어이없어 하며 맥주를 마신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서계인 옮김, 청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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