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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in life

9화. 박동훈 처럼

by 강진호프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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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연출 박해영 극본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아내는 인생 드라마라고 했다. 이웃집 아저씨는 꼭 혼자, 어두운 방안에서 본방을 사수한다고 했다. 누구는 주제곡을 들을 때마다 미간 부분을 굵게 찡그리고는 했다. 무엇에 빠져 있었는지 아님 그깟 드라마라 치부해버렸는지, 나는 무관심했다. 세월은 흐르고 TV 리모콘을 틀어쥐고 무엇이 되어주지 못하는 시간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가끔 이 드라마와 마주치고는 했다. 찔끔찔끔 눈이 갔고 가끔 눈시울이 따땃해졌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열흘 남짓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인터넷 플래폼을 통해 첫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정주행을 했다. 며칠 만에 천방지축 헤엄치던 장면들이 잘 마른 북어들처럼 한 줄로 나란히 꿰어졌다. 평범하거나 또는 지독히 불행하거나, 존재감이 없거나 삶의 대부분을 견디고 살거나 하던 남녀 주인공이 만나 스스로가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 가는 스토리는 시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공동체의 모습은 잘 차려진 식사를 한 후 맛보는 상큼하고 달달한 후식 같았다. 그렇게 이 드라마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파이팅!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꽤 괜찮은 삶이라구요. 누구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이 없을까. 착하게 살자. 박동훈 처럼.

 


 

J가 가지고 온 맥주를 나는 유리잔에 따랐다.

「양친은 어디에 사시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왜지?」

「훌륭한 인간은 자신의 복잡한 집안일 따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요. 그렇죠?」

「너는 훌륭한 인간이니?」

15초 동안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서계인 옮김, 청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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