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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빛나는 것들

문학. 황지우 詩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by 강진호프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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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주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동명시집, 문학과지성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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