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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2

문학. 황지우 詩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주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 2022. 5. 6.
photo_log. 거룩한 식사 자정 넘도록 걸어도 도착하지 않는 마음이 뜨거운 국밥 한 그릇 말아 먹는다 퀭한 눈 비릿한 손끝으로 들어올리는 소줏잔 불콰해져 우리의 식사가 눈물겨웁다 ...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 '거룩한 식사' 중에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2022.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