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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빛나는 것들

문학. 법정 <나그네 길에서> :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by 강진호프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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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떨치고 나그네 길에 오르면 유행가의 가사를 들출 것도 없이 인생이 무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地平)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나날의 나를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구름을 사랑하던 헤세를, 별을 기리던 쌩 떽쥐뻬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낯선 고장을 헤매노라면 더러는 옆구리께로 허허로운 나그네의 우수(憂愁)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다.
...
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내 속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자기 정리(自己整理)의 엄숙한 도정(道程)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법정, '나그네 길에서' (「무소유」. 범우사. 1990 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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